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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 (조선 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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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명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사간원정언을 시작으로 여러 관직을 거쳤다. 김안로, 윤원로, 윤원형 일파를 탄핵하여 사림의 존경을 받았으며, 을사사화 피해자 신원을 위해 노력했다. 명종 때 청백리에 선정되었으며, 서울특별시 노원구 월계동에 묘역이 있으며,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2. 생애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해 사간원정언을 시작으로, 지평이 되고 사헌부지평 시절에 좌의정이던 김안로를 탄핵해 사림들의 존경을 받았다. 이후 부교리로 승진하고, 교리, 응교, 집의를 거쳐 경차관이 되고 사헌부집의를 하다가 양양부사로 외직에 나가서 선정을 베풀었다. 이후 홍문관전한으로 있다가 시강관을 겸하는데 당시 영의정 윤인경좌의정 유관, 영중추부사 홍언필 등과 윤원로를 탄핵해서 귀양을 보냈다. 이후 홍문관직제학을 거쳐 시강관이 되고 이후 우부승지가 되는데, 당시에 윤원형과 이기가 사림들을 많이 죽이니, 많은 대신들이 모른 체를 하였지만 그는 대사헌이던 구수담과 윤원형, 이기를 탄핵해 사림들의 존경을 받았다. 이후 명종의 총애로 대사간이 되고, 연이어 홍문관부제학사간원대사간을 했다. 이후 황해도관찰사로 외직에 나가 있다가 다시 홍문관부제학으로 내직에 들어오고, 사헌부대사헌까지 승진하는데 대사헌과 이조참판을 하며 을사사화 때 죽은 사림들을 신원시키라고 명종에게 상소를 올렸는데, 이후 명종의 총애로 공조판서에 오르고 형조판서, 호조판서, 이조판서를 거쳐 우참찬좌참찬을 하는데 의정부좌참찬 시절 심연원, 상진, 이준경, 윤개 등과 조정의 폐단을 개혁하려고 했다. 이후 우찬성을 거쳐 좌찬성이 되는데 의정부좌찬성 시절에는 이준경, 이윤경, 홍섬 등과 윤원형의 일당들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 이후 우의정이 되었을 때 윤원형이 실각하자 윤개, 홍섬, 권철, 이준경, 박순, 윤두수, 윤근수, 심의겸, 김개, 성혼, 심통원, 이량, 홍성민 등과 윤원형을 탄핵하여 귀양보냈고, 이후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이 된다. 이후 영중추부사로 치사했다.

2. 1. 관직 진출과 김안로 탄핵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해 사간원정언을 시작으로, 지평이 되고 사헌부지평 시절에 좌의정이던 김안로를 탄핵해 사림들의 존경을 받았다. 이후 부교리로 승진하고, 교리, 응교, 집의를 거쳐 경차관이 되고 사헌부집의를 하다가 양양부사로 외직에 나가서 선정을 베풀었다. 이후 홍문관전한으로 있다가 시강관을 겸하는데 당시 영의정 윤인경좌의정 유관, 영중추부사 홍언필 등과 윤원로를 탄핵해서 귀양을 보냈다. 이후 홍문관직제학을 거쳐 시강관이 되고 이후 우부승지가 되는데, 당시에 윤원형과 이기가 사림들을 많이 죽이니, 많은 대신들이 모른 체를 하였지만 그는 대사헌이던 구수담과 윤원형, 이기를 탄핵해 사림들의 존경을 받았다. 이후 명종의 총애로 대사간이 되고, 연이어 홍문관부제학사간원대사간을 했다. 이후 황해도관찰사로 외직에 나가 있다가 다시 홍문관부제학으로 내직에 들어오고, 사헌부대사헌까지 승진하는데 대사헌과 이조참판을 하며 을사사화 때 죽은 사림들을 신원시키라고 명종에게 상소를 올렸는데, 이후 명종의 총애로 공조판서에 오르고 형조판서, 호조판서, 이조판서를 거쳐 우참찬좌참찬을 하는데 의정부좌참찬 시절 심연원, 상진, 이준경, 윤개 등과 조정의 폐단을 개혁하려고 했다. 이후 우찬성을 거쳐 좌찬성이 되는데 의정부좌찬성 시절에는 이준경, 이윤경, 홍섬 등과 윤원형의 일당들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 이후 우의정이 되었을 때 윤원형이 실각하자 윤개, 홍섬, 권철, 이준경, 박순, 윤두수, 윤근수, 심의겸, 김개, 성혼, 심통원, 이량, 홍성민 등과 윤원형을 탄핵하여 귀양보냈고, 이후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이 된다. 이후 영중추부사로 치사했다.

2. 2. 윤원로, 윤원형 일파와의 갈등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해 사간원정언을 시작으로, 지평이 되고 사헌부지평 시절에 좌의정이던 김안로를 탄핵해 사림들의 존경을 받았다. 이후 부교리로 승진하고, 교리, 응교, 집의를 거쳐 경차관이 되고 사헌부집의를 하다가 양양부사로 외직에 나가서 선정을 베풀었다. 이후 홍문관전한으로 있다가 시강관을 겸하는데 당시 영의정 윤인경좌의정 유관, 영중추부사 홍언필 등과 윤원로를 탄핵해서 귀양을 보냈다. 이후 홍문관직제학을 거쳐 시강관이 되고 이후 우부승지가 되는데, 당시에 윤원형과 이기가 사림들을 많이 죽이니, 많은 대신들이 모른 체를 하였지만 그는 대사헌이던 구수담과 윤원형, 이기를 탄핵해 사림들의 존경을 받았다. 명종의 총애로 대사간이 되고, 연이어 홍문관부제학사간원대사간을 했다. 이후 황해도관찰사로 외직에 나가 있다가 다시 홍문관부제학으로 내직에 들어오고, 사헌부대사헌까지 승진하는데 대사헌과 이조참판을 하며 을사사화 때 죽은 사림들을 신원시키라고 명종에게 상소를 올렸는데, 이후 명종의 총애로 공조판서에 오르고 형조판서, 호조판서, 이조판서를 거쳐 우참찬좌참찬을 하는데 의정부좌참찬 시절 심연원, 상진, 이준경, 윤개 등과 조정의 폐단을 개혁하려고 했다. 이후 우찬성을 거쳐 좌찬성이 되는데 의정부좌찬성 시절에는 이준경, 이윤경, 홍섬 등과 윤원형의 일당들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 이후 우의정이 되었을 때 윤원형이 실각하자 윤개, 홍섬, 권철, 이준경, 박순, 윤두수, 윤근수, 심의겸, 김개, 성혼, 심통원, 이량, 홍성민 등과 윤원형을 탄핵하여 귀양보냈고, 이후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이 된다.

2. 3. 을사사화 피해자 신원 노력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해 사간원정언을 시작으로 여러 관직을 거쳤다. 사헌부지평 시절에 좌의정이던 김안로를 탄핵해 사림들의 존경을 받았다. 이후 윤원형과 이기가 사림들을 많이 죽일 때 대사헌이던 구수담과 함께 그들을 탄핵해 사림들의 존경을 받았다. 대사헌과 이조참판을 하며 을사사화 때 죽은 사림들을 신원시키라고 명종에게 상소를 올렸다. 의정부좌참찬 시절 심연원, 상진, 이준경, 윤개 등과 조정의 폐단을 개혁하려고 했다. 의정부좌찬성 시절에는 이준경, 이윤경, 홍섬 등과 윤원형의 일당들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 윤원형이 실각하자 윤개, 홍섬, 권철, 이준경, 박순, 윤두수, 윤근수, 심의겸, 김개, 성혼, 심통원, 이량, 홍성민 등과 윤원형을 탄핵하여 귀양보냈다.

2. 4. 조정 폐단 개혁 노력과 윤원형 일파 탄핵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해 사간원정언을 시작으로, 사헌부지평 시절에 좌의정이던 김안로를 탄핵해 사림들의 존경을 받았다. 이후 홍문관부제학사간원대사간을 했다. 사헌부대사헌까지 승진하는데 대사헌과 이조참판을 하며 을사사화 때 죽은 사림들을 신원시키라고 명종에게 상소를 올렸다. 의정부좌참찬 시절 심연원, 상진, 이준경, 윤개 등과 조정의 폐단을 개혁하려고 했다. 의정부좌찬성 시절에는 이준경, 이윤경, 홍섬 등과 윤원형의 일당들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리기도 했다. 우의정이 되었을 때 윤원형이 실각하자 윤개, 홍섬, 권철, 이준경, 박순, 윤두수, 윤근수, 심의겸, 김개, 성혼, 심통원, 이량, 홍성민 등과 윤원형을 탄핵하여 귀양보냈다.

3. 묘역

정간공 이명 묘역(貞簡公 李蓂 墓域)은 서울특별시 노원구 월계동에 있으며, 1983년 11월 11일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제55호로 지정되었다.

선조 7년(1574) 5월에 건립된 신도비는 화강암제 대좌(臺座) 위에 대리석제 비신(碑身)을 얹은 형태이다. 대좌 윗면에는 연꽃무늬를 새기고 옆면에는 안상(眼象)을 새겼다. 비문은 외아들 이응로의 부탁으로 김귀영(1519∼1593)이 지었고, 비문과 머리전서[頭篆] 글씨는 심충겸(1545∼1594)이 썼다.

신도비 북쪽 산중턱에는 문관석 2기, 석등 1기, 묘갈 1기, 망주석 2기가 있는 이명의 묘소가 있다. 묘소 남쪽 건너편 산줄기에는 이명의 증조부·조부·부친의 묘가 있다. 이명은 명종청백리에 선정되었다.

3. 1. 정간공 이명 묘역

정간공 이명 묘역(貞簡公 李蓂 墓域)은 서울특별시 노원구 월계동에 있으며, 1983년 11월 11일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제55호로 지정되었다.

선조 7년(1574) 5월에 건립된 신도비는 화강암제 대좌(臺座) 위에 대리석제 비신(碑身)을 얹은 형태이다. 대좌 윗면에는 연꽃무늬를 새기고 옆면에는 안상(眼象)을 새겼다. 비문은 외아들 이응로의 부탁으로 김귀영(1519∼1593)이 지었고, 비문과 머리전서[頭篆] 글씨는 심충겸(1545∼1594)이 썼다.

신도비 북쪽 산중턱에는 문관석 2기, 석등 1기, 묘갈 1기, 망주석 2기가 있는 이명의 묘소가 있다. 묘소 남쪽 건너편 산줄기에는 이명의 증조부·조부·부친의 묘가 있다. 이명은 명종청백리에 선정되었다.

3. 2. 묘역의 구성

정간공 이명 묘역은 서울특별시 노원구 월계동에 있으며, 1983년 11월 11일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제55호로 지정되었다.

선조 7년(1574) 5월에 건립된 신도비는 화강암제 대좌 위에 대리석제 비신을 얹은 형태이다. 대좌 윗면에는 연꽃무늬, 옆면에는 안상(眼象)을 새겼다. 비문은 외아들 이응로(李應老)의 부탁으로 김귀영이 지었고, 비문과 머리전서[頭篆] 글씨는 심충겸이 썼다.

신도비 북쪽 산중턱에는 묘소가 있으며, 문관석 2기, 석등 1기, 묘갈 1기, 망주석 2기가 있다. 이명의 묘소 남쪽 건너편 산줄기에는 증조부·조부·부친의 묘가 위아래로 있다.

4. 평가

4. 1. 청백리로서의 면모

4. 2. 더불어민주당의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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